루 게릭, 가장 운이 좋았던 사나이
가장 운이 좋았던 사나이 - 야구 선수 루 게릭(Lou Gherig)
1. 루 게릭의 유년기 그리고 양키스 입단
루 게릭은 1903년 6월 19일 뉴욕에 거주하는 독일 이민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루 게릭은 사실 형제 자매가 있었으나, 모두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혼자 자랐다고 한다.
루 게릭의 아버지는 철강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회사 출근을 안하기도 하고 술에 취한 날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집안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루 게릭의 어머니였는데, 루 게릭이 태어나기 전 이미 3명의 아이들을 질병으로 잃었기 때문에, 루 게릭을 애지중지 키웠다고 한다.
루 게릭이 처음 야구를 접한 것은 그의 가족이 뉴욕 요크빌에서 워싱턴 헤이츠(Washington Heights)로 이사갔을 때 였다. 워싱턴 헤이츠는 한 때 뉴욕 하이랜더(New York Highlanders)의 연고지 였는데, 뉴욕 하이랜더가 바로 루 게릭의 고향(?)같은 팀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의 전신이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25센트(당시 외야 좌익수 쪽 관람비)만 모으면 바로 야구장을 향해 달려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이민자 1세대 신분으로 풍족한 집안 살림을 꾸릴 수 없었는데 그의 아들 만큼은 이를 대물림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루 게릭에게 공부를 꾸준히 하라고 하셨다. 루 게릭은 그 충고를 듣고 절대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물론, 그의 유일한 취미인 야구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야구에 대한 재능은 고등학생 재학 시절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그는 1917년 맨하탄에 있는 Commerce 고등학교에 재학하면서 야구팀 및 미식축구 팀에 등록을 하고 그 일원으로서 경기에 나서는 일이 많았다. 한 경기에서는 10,000이 넘는 관객들 앞에서 게임이 시작 되었고, 그는 9회 초 8대6 리드 상황에서 우측 담장을 넘겨 버리는 만루 홈런을 쏘게 된다. 이를 그 당시 최고의 스타 베이브 루스와 비교하며 언론에서 루 게릭에 대해 대서 특필을 하게 된다.
그는 학교에 다니면서 그의 어머니를 돕기 위해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같이 설거지와 같은 잡일을 하면서 가정에 보탬이 되는 노력도 수 없이 많이 하였다. 루 게릭은 그 영향을 받아서 일까? 컬럼비아 대학에 미식축구 팀에 진학을 하게 되고, 야구는 멀어진 것 처럼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루 게릭의 야구 실력을 알고 있는 자이언츠(현재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스카우터 Arthur Irwin은 18살 소년에게 계약을 하려고 했다. "뉴욕 자이언츠의 감독 McGraw랑이랑 너의 경기를 보았으니, 한번 우리 앞에서 시범을 보여줘라" 말과 함께.
컬럼비아 대학 재학 시절의 루 게릭
사실, 감독은 그의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연습 배팅 및 수비(Fielding)모습을 보고 그와 계약을 할지 말지 정하려고 했었다. 루 게릭은 연습 배팅에서는 계속 홈런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의 수비가 너무 안좋아서 "당장 저 녀석을 내보내!"라는 소리를 듣고 계약을 하지 못하였다. 대신 그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엄청난 투수로 성장하였다.
1923년 4월 18일, 양키 스타디움의 오픈일.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온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양키 스타디움 오픈 기념으로 홈런을 쏘아주었다. 같은 날, 다른 게임에서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투수로서 등판한 루 게릭은 그 당시 팀 역사상 최고 기록인 17개의 삼진을 기록한다. 이 때, 뉴욕 양키스의 스카우터 폴 크리첼이 양키 스타디움의 개막을 보지 않고 루 게릭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좌타석에 들어섰을 때의 그 힘에 반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폴 크리첼은 루 게릭에게 계약금 1500달러와 1923년 시즌 연봉 2,000달러를 안겨주며 계약을 성사시킨다.
2. 살인 타선(Murderers' Row)의 중심을 이룬 철인 루 게릭
루 게릭은 1923년 6월 15일 경기에 대타로 첫 메이저리그 데뷔를 가지게 된다. 처음 두 시즌 동안 대타로서의 역할만 맡았기 때문에, 출장 기회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1루수 윌리 핍의 슬럼프를 기회로 삼아 연속 선발 출장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그는 이때부터 2,130 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로 인해 The Iron Horse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1995년 9월 6일 칼 립켄 주니어에 의해 깨지게 된다.
몸에 공을 맞고 부축되어 나가는 루 게릭, 그는 이 경기를 끝까지 임했다
그는 1925년에 이르게 되어서야, 437타수 동안 0.295의 타율과 20개의 홈런 그리고 68타점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27년, 루 게릭은 타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즌 중의 하나를 보내게 되었다. 그 해 218개의 안타를 치면서 0.373의 타율, 52개의 2루타, 18개의 3루타, 47개의 홈런과 175 타점을 기록했고, 장타율은 무려 0.765(7할 6푼 5리)에 이르렀다. 그의 팀원들과 더불어 뉴욕 양키스의 살인 타선을 이루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전설적인 선수 베이브 루스와 함께 10시즌을 함께 보냈는데, 그의 그늘 아래에서 있었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루 게릭과 베이브 루스
그는 커리어 동안 3할 대 타율과 5번의 40홈런 이상을 기록한 엄청난 타자였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도 병과 함께 저물기 시작한다.
3. 루 게릭병
우리가 알던 루 게릭병(Lou gherig's Disease)는 바로 루 게릭이 걸린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을 지칭한다. 운동신경이 말을 안듣고, 근육은 마비가 되는 병이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대표적인 환자로 알려져 있다.
루 게릭은 스프링 캠프 도중, 주루 플레이에서 갑자기 이상을 보이게 된다. 갑자기 뛰다가 넘어지는 중, 스피드 또한 현저하게 줄은 것이다. 시즌 도중, 그의 타격 기록(4월)은 0.143의 타율과 1타점으로 확 줄게 된다.
그의 은퇴 결심은 4월 30일 이었다. 워싱턴 시네이터스(현재의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2,130번째 연속출장 경기에 나오게 된다. 그는, 4타수 무안타에 토스볼도 떨어뜨리는 최악의 실수를 벌이게 되지만, 선수들은 그의 플레이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는 자신의 무능한 플레이를 보며, 은퇴를 결심하였고 더 이상의 게임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5월 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원정 경기사 시작하기 전 매카시 감독에게 "감독님, 저 오늘은 벤치에 있겠습니다"라고 전하며, 그는 선발 명단을 주심에게 가져다 주는데, 자신의 이름이 빠진 명단이었다. 그는 벤치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 명단을 본 심판들은 모두 놀랐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브릭스 스타디움(Briggs Stadium, 당시 타이거스의 홈 구장)의 장내 아나운서는 팬들에게
"신사 숙녀 여러분, 게릭의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이 2,130경기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타이거스 팬들은 기립박수를 보내주었다. 게릭은 그로부터 몇 주 더 지나도록 팀의 주장으로 선수단에 머물렀지만 다시는 야구를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의 36번째 생일날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의 진단을 받게 된다. 그가 그의 아내 엘리너에게 보낸 편지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나쁜 소식이야, 쉽게 이야기해서 영구적 소아마비와 같은 측색 경화증이래. 고칠 방법이 없대... 이 경우는 거의 그렇다고 하네. 아마도 일종의 병원균때문이라지... 그게 주변사람들에게 전염된다고는 듣질 못했어... 지금과 같은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은 반반이래. 10년이나 15년 목발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 야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지..."
4. 가장 운이 좋았던 사나이, 루 게릭
뉴욕 양키스 1939년 6월 21의 루 게릭의 은퇴를 공식 발표하고, 7월 4일 미국의 독립 기념일 때 '루 게릭 은퇴식'이 거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7월 4일, 루 게릭이 양키스타디움에 모습을 드러낸다. 핀스트라이프 유니폼(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지칭)이 후줄근하게 그의 몸에 걸쳐진듯 보였고, 그의 얼굴을 너무나도 지쳐보였다. 그는 필드 안으로 천천히 걸어왔는데, 예전의 그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그는 야구장 관리인, 고위인사, 청소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선물을 받았는데 은퇴식 내내 많은 선불을 땅에 내려 놓았다. 선물을 들고 있을 팔의 힘조차 없었기 때문.
그리고 루 게릭의 연설이 시작 되었다.
"팬 여러분, 지난 2주 동안 제가 앓고 있는 질병에 관해서 들으셨겠지요. 하지만 오늘, 저는 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운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야구장에서 17년이나 뛰었고 팬 여러분들로부터 친절과 격려만을 받았습니다.
이 위대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당신들 중 누가 그들과 함께 한 일생의 찬란한 순간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저는 운이 좋습니다. 누가 제이콥 루퍼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또한 위대한 제국의 창시자 애드 버로우는요? 6년 동안 함께한 놀라운 작은 친구 밀러 허긴스는요? 뛰어난 리더이며 심리학의 영리한 학생이자 오늘날 최고의 야구 감독인 조 매카시와 함께한 9년은요? 그렇습니다. 저는 운이 좋습니다.
이길 수만 있다면 오른팔을 잘라내어도 아깝지않을 팀, 우리쪽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런 팀인 뉴욕 자이언츠(현재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선물을 보내주었다면-그것은 대단한 일이죠. 구장관리인 이하 하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당신을 트로피와 함께 기억할 때 그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자신의 딸이 사위와 말다툼을 할 때도 사위편을 들어주는 멋진 장모가 있다면 그것은 멋진 일입니다. 당신을 가르치고 키우기 위해 평생을 바친 부모님이 계시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힘의 근원이 항상 되어주고 당신이 가능하다고 꿈꿨던 것보다 더 많은 용기가 생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아내가 있다면-그것은 제가 아는 최고의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고통스러운 질병을 앓고 있지만, 위대한 삶을 살았다고 말씀드리면서 연설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Fans, for the past two weeks you have been reading about a bad break. Today, I consider myself the luckiest man on the face of the earth.
I have been in ballparks for 17 years and have never received anything but kindness and encouragement from you fans. Look at these grand men. Which of you wouldn’t consider it the highlight of his career just to associate with them for even one day?
Sure I’m lucky.
Who wouldn’t consider it an honor to have known Jacob Ruppert? Also, the builder of baseball’s greatest empire, Ed Barrow? To have spent six years with that wonderful little fellow, Miller Huggins? Then to have spent the next nine years with that outstanding leader, that smart student of psychology, the best manager in baseball today, Joe McCarthy?
Sure I’m lucky.
When the New York Giants, a team you would give your right arm to beat, and vice versa, sends you a gift -- that’s something. When everybody down to the groundskeepers and those boys in white coats remember you with trophies -- that’s something.
When you have a wonderful mother-in-law who takes sides with you in squabbles with her own daughter -- that’s something.
When you have a father and a mother who work all their lives so you can have an education and build your body -- it’s a blessing.
When you have a wife who has been a tower of strength and shown more courage than you dreamed existed -- that’s the finest I know.
So, I close in saying that I might have been given a bad break, but I've got an awful lot to live for.
뉴욕 양키스는 루 게릭의 유니폼 등번호인 4번을 영구 결번 처리하였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영구 결번이다. 그리고 그는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에도 들어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