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선수 소개

코리안 특급 박찬호 1편

오정주 2015. 3. 25. 13:42

# 이번 포스팅은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1> 박찬호의 어린시절


박찬호 선수는 충남 공주 전파상집 아들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잠깐 육상부를 했었으나 곧 야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야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운동장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야구부가 부러워서' 라고 합니다. 지금 시대에 비추어보면 우스꽝스럽지만, 당시에는 먹을게 귀해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박찬호 선수의 유년기



야구 실력이 출중했던지 공주고 3학년 시절에, 1991년 한 미 일 청소년 야구대회에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선수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임선동 선수,  故조성민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대표님 감독님의 마음을 얻게 되어서 1선발로서의 기회를 얻게 됩니다. 


아무도 박찬호를 모르던 그 시절에 어떻게 1선발을 가져갈 수 있었는지 다들 궁금해 했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통 국가대표팀은 선수들의 컨디션을 유지해야하기 때문에, 혹독한 훈련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박찬호 선수는 그 점이 불안하여 감독님에게 따로 개인 훈련을 열심히 하겠다고 전했고, 감독님은 허락했습니다. 실제로 개인 훈련을 하는 모습을 따로 감시를 하셨는데, 너무나 열심히하여서 이런 선수에게는 꼭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박찬호 선수는 국가대표에서 1선발 자리라는 기회를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박찬호 선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1차전 일본전에서 승리 투수, 그 뒤 미국전에서도 승리 투수를 거머쥐게 됩니다. 그 경기가 열렸던 장소가 바로 현재 LA다저스의 다저스타디움이었는데, 설마 자신이 2년 뒤 이 자리에서 투수를 하고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합니다.


<2> 메이저리그 진출 이야기


박찬호 선수가 1992년 유니버시아드 야구대회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돌아왔는데, 미국에서 집으로 전화가 한 통 와있었습니다. 바로 스카우트 제의였는데, 이를 제안한 팀은 바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였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확인해보니, 30만 달러를 줄테니 바로 군대에 다녀와서 팀에 합류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전화인가 싶어 가족들하고 얘기를 하던 도중, 전화 한 통이 더 오게되는데 바로 그 팀은 뉴욕 양키스였습니다.


박찬호는 이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웠다고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메이저리그로 간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이제 전화 한 통이 더 오는데, 그 전화의 주인공은 바로 LA 다저스였습니다. 


박찬호는 이 상황에서 1991년 청소년 야구대회 때 만난 한 아저씨에게 연락을 합니다. 그 당시 자신을 재워주셨던 야구광 한인 교포 아저씨인데, 이름은 스티브 김입니다. 그 아저씨에게 연락을해서 다저스에서 무슨 계약을 제시했는지 알아봐달라 부탁했습니다. 



박찬호가 말한 민박집 아저씨, 스티브 김(본명 김철원)



다저스 측에서 60만불 계약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스티브 김 통역해서 박찬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저씨가 다저스에세 무턱대고 이를 200만불로 올려달라는 요구를 했다는 것입니다. 다저스는 120만 달러에서 협의를 하자고했고, 스티브 김은 이를 받아들여서 결국 120만 달러에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박찬호의 기존 소속팀 그리고 병역 문제가 있으니 구단주와 스카우터가 직접 한국을 들러서 해결하라고 전했습니다. 결국 다저스의 오말리 구단주와 팀 주치의 프랭크 조브 박사가 한국에 옵니다. 


참고로, 그 당시 유망주와의 최고 계약금은 드래프트 1픽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경신했던 150만 달러였습니다. 박찬호가 120만불을 기록을 했던 것이죠. 이런 계약을 성사시켜준 스티브 김은 그의 에이전트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박찬호가 스캇 보라스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그리고 박찬호를 보러 한국으로 찾아온 프랭크 조브 박사는 토미존 수술을 최초로 성공시킨 매우 유명한 의사이십니다. 현재,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있습니다. 2014년에 아쉽게도 타계하셨습니다.


한국에서 계약을 마무리 짓게 된 박찬호는 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1994년 1월 11일 화려한 입단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눈부신 미래만 있을 것 같던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2경기를 치루고 마이너리그로 강등 당하게 됩니다.



#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