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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메이저리그 이야기

메이저리그 경쟁력 균형 유지 정책 2편 - 현금 트레이드 규제

<2> 현금 트레이드 규제, 역사를 바꾼 하나의 결정


오클랜드 애슬레틱스(Oakland Athletics)는 1972년부터 1974년까지 3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에 성공했습니다. 당시의 스타플레이어로 비다 블루(Vida Blue), 조 루디(Joe Rudi), 롤리 핑거스(Rollie Fingers), 레지 잭슨(Reggie Jackson), 켄 홀츠먼(Ken Holtzman), 살 반도(Sal Bando)가 있었습니다. 후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선수는 무려 2명(레지 잭슨, 롤리 핑거스)이나 있었을 만큼 초호화 군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비다 블루, 롤리 핑거스, 조 루디


월드시리즈 패권을 3년 연속 차지한 황금기에도 불구하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관중 증가가 미진하여 구단 수입이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작은 도시를 연고지로 했다는 것과 인근 지역에 위치한 빅 마켓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팬들을 휩쓸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팀 우승으로 인해 선수들은 몸값 인상을 요구하였는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FA(Free Agent)제도가 1974년에 등장함으로서, 오클랜드가 선수들에게 주어야 할 페이롤이 곧 증가한다는 것도 매우 심상치 않았습니다. 제한된 구단 수입 속에서, 당시 오클랜드의 구단주 Charles O. Finley는 구단의 우승보다는 '이익'을 더 챙기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 선수들과의 몸값 상승에 대한 협상을 생각하기보다는 이 선수들을 다른 구단에 트레이드 시키기로 결정을 합니다.


레지 잭슨과 켄 홀츠먼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유망주를 댓가로 트레이드를 단행하게 되지만(1976년 4월), 나머지 3명에 대한 트레이드를 현금 트레이드를 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비다 블루를 1.5M의 가격으로 양키스에게, 나머지 두 선수는 1M의 가격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트레이드하기로 협의합니다. 총 3.5M의 순익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게 남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당시 3.5M은 엄청나게 큰 가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변호사 출신 메이저리그 커미셔너(총재) 보위 쿤(Bowie Kent Kuhn) 총재가 이 딜에 대해 "Not in the best interests of baseball(야구계에서 일어나선 안될 것 같군요)"이라고 표현하며 딜을 파괴시킵니다. (메이저리그는 커미셔너 제도가 있기 때문에, 트레이드, 연봉 조정 같은 일들은 커미셔너에게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총재가 승인을 안할 경우 다 무효화 되는 일이 생깁니다)



당시 보위 쿤 총재의 인터뷰 장면, "Not in the best interests of baseball"


오클랜드 구단주는 "Sounds like village idiots!(시골 멍청이 같은 소리 하고있네!)" 라고 외치며, 그 결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배경이 바로 FA제도 때문이었는데요, 그 제도로 인해 선수들의 몸값이 올라갈 것이 뻔하고 가난한 구단에서는 이를 못잡기 때문에 진작에 팔아버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필자가 지금 보아도 매우 합리적이고 좋은 생각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Finley 구단주는 이 생각을 총재가 이해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자신을 적대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구단주는 당연히 화가날 수 밖에 없고, 이때부터 총재와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저 3.5M의 가격을 양키스나 레드삭스로부터 얻어낼 수 없다면, 총재로부터 그 돈을 뜯어내는게 옳다고 생각했고 결국 시카고 연방 법원에서 총재한테 10M짜리 소송을 걸어버립니다. 그 소송 기간에는 루디, 블루, 핑거스 세 명의 선수를 강제로 벤치에 앉히며 "이 선수들은 이미 다른 구단 선수다"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외치기 시작합니다. 핀리 구단주는 당시 아메리칸리그 총 책임자인 Lee MacPhail의 말도 무시해버립니다. 당시 언론에서는 오클랜드의 코끼리 마크 만큼 구단주가 고집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남발합니다.


10M의 돈을 총재에게 뜯어낼 수 있을 줄 알았던 구단주는 결국 법원 판결에서 패배하고 맙니다. "총재의 권한이 구단주의 권한보다 앞선다"라는 법원의 결정이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이것입니다. 다른 구단이나 핀리 구단주가 실행한 '선수들을 댓가로 선수를 얻어오는 트레이드'나 '소규모 현금 트레이드'는 보위 쿤 총재가 딜을 막는 경우가 없었다는 점. 이 사건(1976년)을 계기로, 대규모 현금으로 선수를 사고 파는일은 사실상 메이저리그에 용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구단주 눈에는 구단의 재정 상황과 앞날을 봐야했기 때문에, 현금 트레이드를 원했지만 총재의 생각은 달랐습 니다. 총재는 지금 이 트레이드를 통과시켜버리면, 앞으로 양키즈나 레드삭스와 같은 빅마켓이 현금 트레이드로 좋은 선수들을 싹쓸이 해갈 것이 보였고 이는 경쟁력을 없애서 리그 전체의 흥행을 저조시킬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 생각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고, 이는 메이저리그의 경쟁력 균형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보위 쿤 총재는 인터뷰에서는 단지 "Not in the best interests of baseball(야구계에서 일어나선 안될 것 같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말했지만, 이는 무수히 많은 생각이 담겨있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현재,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현금 트레이드 상한선을 100만 달러로 지정해놓고 있으며 사무국 승인하에 그 범위를 변동할 수 있습니다. 사무국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이유와 구단과의 깊은 토의가 필요하게끔 되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미국 언론에서 이 사건을 추억합니다. '과연 이 딜을 총재가 승인했다면 메이저리그는 살아있을까?' 라는 질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