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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메이저리그 이야기

흑인, 동양인 그리고 LA다저스 - 2편

3. 동양인(Asian) 메이저리거의 등장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아시아인을 뽑아보자.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은 아마 스즈키 이치로, 박찬호, 추신수, 마쓰이, 구로다 정도로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나열한 사람들의 주 활동 시기는 1990 ~ 2010년이다. 최초의 동양인 메이저리거는 언제 등장하였을까? 무려 1960년대이다.

 

윌리 메이스와 마사노리 무라카미

 

 

일본은 미국의 영향으로 인해 한국보다 좀 더 일찍 야구라는 스포츠가 발달되어 있어, 한국보다 빠른 메이저리그 진출 러쉬가 있었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투수 '마사노리 무라카미', 최초의 동양인 메이저리거이다.

 

마사노리 무라카미는 일본 퍼시픽 리그에 있는 난카이 호크스에서 입단 제의를 받았으나, 자신의 입단에 대하여 조건을 내세운다. 바로 미국으로의 유학이다. 따라서, 난카이 호크스의 감독은 그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마이너리그 산하 팀 프레스노(Fresno)로 보내게 된다. 마사노리는 싱글 A 마이너팀인 그곳에서 훈련을 하며 캘리포니아 리그 신인왕을 수상하게 되고, 8월에 메이저리그에서 영예로운 콜업을 받게 된다. 그렇게 그의 데뷔는 1964년 9월 1일이었고, 자이언츠에서 2시즌을 멋있게 보냈으나, 계약 문제로 인해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후, 30년간 아시아인의 진출은 없었다. 하지만, 1994년 일본야구리그(NPB)의 신성 노모 히데오가 메이저리그 진출을 향한 날갯짓을 시작한다. 그는 소속팀과의 관계도 안좋았고, 1988 서울 올림픽에서 경험한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힘을 존경하기 시작했다. 결국,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 도전을 진행한 것이다. 자유 계약 신분으로 LA 다저스로 찾아가 입단 테스트를 받고 마이너리그에서부터 선수 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일본 최고의 자리를 버렸기에, 그의 도전 정신은 마땅히 칭찬 받아야 했다. 결국, 피나는 노력 끝에 LA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가질 수 있었고, 그 날짜는 1995년 5월 2일이었다.

 

독특한 노모 히데오의 투구폼

 

 

비슷한 시간대에, 한국의 한 메이저리그 유망주도 메이저리그의 맛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 선수는 바로 코리안 특급 박찬호였다. 노모 히데오와 달리 박찬호는 국제 무대에서 스카우트의 눈 도장을 받은 케이스였다. 박찬호 자신이 MBC '무릎팍 도사'에서 밝혔듯이, 애틀란타 브레이브스를 필두로 다양한 팀들이 그와 컨택을 하였으나,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LA 다저스가 바로 승리자였다. 박찬호 역시 마이너리그를 경험하면서 성장하였고, 메이저리그 데뷔를 1994년 4월 8일에 가지게 된다. 물론, 다시 마이너리그를 다녀오게 되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선수소개 박찬호 편에서 만나도록 하겠다.

 

노모 히데오와 박찬호

 

 

박찬호와 노모의 메이저리그 데뷔(1994~1995)가 시작되고, 많은 숫자의 동양인 메이저리거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90년대에 노모 이후 7명의 일본 선수들이 데뷔를 하였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수십명에 달하는 숫자의 아시아 선수들이 출현하였다. 한국에서도 김병현, 서재응, 백차승, 최희섭 등이 진출하였고, 그들의 훌륭한 활약에 국제 스카우터들이 일본 야구리그 및 한국 야구리그를 매일 체크하고 있다. 박찬호와 노모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야구 개척자'상을 받게 되는데, 그들의 모험이 얼마나 가치가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증표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ESPN에서도 그들을 아시안 1세대 메이저리거라고 코멘트를 해주었고, 이들의 공로를 뉴스로 전해준 바 있다.

 

그런데, 흑인 선수 및 아시아 선수처럼 기존의 메이저리그에 없던 선수들을 LA 다저스가 데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3편에서 만나보도록 하자.